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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롯데다,” 목소리도 못 내는 코참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매물로 나왔다는 루머는 얼마 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개점 2년 만에 하루 평균 5만 명이 찾는 하노이의 명소가 ‘손바뀜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귀국 후 잊고 있던 참에, 며칠 전 롯데쇼핑이 캐나다 수출개발공사(EDC)로부터 2억 달러의 대출을 받고, 앞으로 3년간 최대 5억 달러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매각설은 루머에 그치겠구나’ 하고 말았다.

베트남을 방문하면 어디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곳이 롯데마트다. 하노이 시내를 지나다 보면 어김없이 롯데 계열사의 간판을 보게 된다. 어느 나라든 국민의 일상 속에서 함께 성장한 기업이 있기 마련인데, 베트남에서는 롯데가 분명 그런 기업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멍석 깔렸을 때 ‘제대로 된 목소리’ 냈어야

얼마 전 롯데는 해외 진출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현지 정부와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큰 화제가 됐다. 사업을 하는 국가의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일은 흔치 않다. 이는 곧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사업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롯데의 뒤끝? 호찌민시 스마트 시티 승인 직후 사업 포기)

롯데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누구도 베트남 정부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의 행정 신뢰성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래서인지 논란 이후 롯데가 다시 사업 참여를 검토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관련 기사: 큰 손해 보고 ‘나쁜 패’까지 흔든 롯데)

그러나 ‘롯데 사례’를 단순히 한 기업의 개별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베트남에 진출한 모든 한국 기업이 ‘제2, 제3의 롯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롯데가 겪은 ▲승인된 프로젝트 조건의 일방적 변경 ▲행정 절차 변경 시 사전 협의의 부재 ▲손실 부담의 불균형 등의 문제는 오늘이라도 다른 한국 기업에게 그대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럴 때 가장 앞장서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코참(KOCHAM)’이다.

코참, ‘존재 이유’ 증명의 기회를 놓치다

코참, 특히 북부 하노이 코참은 스스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한국 기업 대표 단체’라고 자부한다. 회원사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나 기관과 교섭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없었다면, 적어도 이달 열린 ‘베트남 비즈니스 포럼(VBF)’에서는 반드시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는 정부와 기업 간 소통 채널이 활발한 편은 아니어서, 그나마 특별한 행사에서나 ‘할 말’을 꺼내 놓을 기회가 열린다. 그 대표적인 장이 바로 VBF 연례회의다.

11월 10일 하노이에서 열린 VBF에는 팜 민 찐(Phạm Minh Chính) 총리가 직접 참석해 각국 기업과 머리를 맞댔다. 어떤 국가는 입장문(Position Paper) 형식으로 공식 정책을 제안했고, 다른 국가는 연설문(Speech)을 통해 공식 의견을 제출했다.

코참도 연설문을 통해 여섯 가지 요청 사항을 전달했다. 모두 시급한 의제들이어서 회원사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롯데는?

그러나 정작 가장 중대한 사안이었던 ‘롯데 사례’는 어디에도 없었다.

‘롯데 사례’는 ‘한 기업의 민원’이 아니라 ‘한국 투자 전체의 위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롯데는 베트남에서 상징적인 한국 대기업 가운데 하나다. 유통·부동산·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투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업이 행정 절차와 계약 이행에서 중대한 갈등을 겪는다면, 이는 곧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는가’라는 신뢰 문제로 직결된다.

코참이 VBF에서 물류 절차 개선이나 부가세 환급 문제를 언급한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한국 기업 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더 큰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코참이 ‘롯데 사례’를 공식 의제로 올렸다면, 이는 단순 민원이 아닌 공동의 정책 이슈가 됐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속 회의와 실무 그룹에서 계속 논의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장기적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까지 혜택을 보았을 것이다.

코참이 이를 회피했다면, 베트남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려나 문제의 심각성을 오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 결과는 세 가지 리스크로 이어진다.

첫째, 정책 리스크다. 베트남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제도 개선 기회가 사라진다. 둘째, 시장 리스크다. 한국 기업의 협상력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낮아진다. 셋째, 조직 리스크로 코참의 대표성과 정당성이 훼손된다. ‘골프 행사나 하고, 카카오톡 광고나 파는 단체’라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코참이 거듭나는 계기 되어야

이번 사태는 코참 내부의 정책 역량과 판단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신호다.

이를 계기로 ‘할 일’을 해야 한다. 우선 VBF에서 ‘기업의 투자 안정성’ 아젠다를 주도해야 한다. ‘롯데 사례’를 계기로, 계약의 안정성과 행정 절차의 일관성을 정례 아젠다로 삼도록 힘써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 기업의 유사한 사례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백서를 발간하는 일도 필요하다. 회원사로부터 계약 변경이나 인허가 지연 사례를 수집해 ‘사례집’을 만들어 유사한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참 내부 거버넌스도 재편해야 한다. ‘골프·네트워킹 중심 단체’에서 정책과 협상 역량을 갖춘 ‘싱크탱크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코참에게 ‘거듭날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코참의 선택과 결정에 그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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