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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예산 털기는 매한가지…

한국에서는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부쩍 늘어나는 ‘도로 보수 공사’다.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같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이다.

얼마 전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오가는 길에서 여러 차례 심각한 정체를 겪었다. 원인은 모두 보수 공사였다. 회사가 있는 송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도로 곳곳에서 경쟁하듯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안전과 직결된 도로 정비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왜 하필 연말에 몰리는가. 막히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연말이라서?’, ‘남은 예산을 소진하려고?’다.

예산은 ‘남기지 않는 것’이 미덕

이런 의심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연말이면 유사한 사례를 반복적으로 접해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연말이면 학교 앞 빵집도 바빠진다”고 한다. 다음 해에 살 빵값을 미리 결제해 두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학생을 위한 합리적인 선구매인지, 단순한 예산 소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문제는 이런 장면이 ‘이례적’이 아니라 ‘연말의 상식’처럼 굳어졌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예산을 남기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해 예산 삭감의 근거가 되거나, ‘예산을 정확히 산정하지 못했다,’ 계획 대비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용을 아껴도 보상이 아니라 불이익이 돌아온다. 결국 예산 집행의 목표는 효율이 아니라 ‘딱 떨어지게 소진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도 예외 아니다

이번에 새삼 확인한 사실은 베트남 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공식 문서를 통해 올해 공공예산의 거의 40%가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고 공개하고, 남은 예산을 연말까지 신속히 집행할 것을 독려했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문서를 보면, 지난해 역시 유사한 규모의 예산이 12월에 집중적으로 집행됐다. ‘연말 몰아쓰기’가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실제로 100% 집행이 이뤄졌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연간 예산의 상당 부분이 마지막 한 달에 ‘전광석화처럼’ 처리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속도 우선’ 집행이 만드는 비용

연말 ‘몰아쓰기’는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작지 않다.

첫째, 사업 품질 저하와 부실 위험이다. ‘예산 집행’이 목적이 되면 설계·감리·시공 등 전 과정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채 공사가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기 성과를 위해 장기 유지·보수 비용을 키우는 길이다.

둘째, 지출의 비효율성이다. 시급하지 않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에 예산이 배정되기 쉽다. 시간이 부족한 집행 과정에서는 특정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이 끼어들 여지도 커진다. 결과적으로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셋째, 연말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공공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공사비와 인건비가 올라가고, 이는 민간 프로젝트 비용 상승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넷째, 행정·사법 리스크다. 속도 위주의 행정은 사후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크고, 문제가 반복될수록 공무원들은 책임 회피로 기운다. 그 결과 ‘소극 행정’이 제도처럼 굳어질 수 있다.

문제 알면서도 반복되는 게 더 큰 위험

베트남 정부도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강력한 반부패 수사가 이어지며 고위 공무원들이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맞물리면서, ‘결정을 늦추고 연말에 몰아서 집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베트남 경제는 겉으로 화려하다. 그러나 숫자 뒤에서 공공투자 집행의 구조적 왜곡이 누적된다면, 중·장기 리스크는 결코 작지 않다.

사회 인프라의 품질이 떨어지고, 공무원의 소극 행정이 고착화되면,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크게 의존하는 베트남은 ‘투자 신뢰도 하락’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피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성장 모델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물 들어올 때 노 젖기’만으로는 부족

베트남은 분명 성장의 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만큼 중요한 건, 배의 바닥을 점검하는 일이다.

연말 예산 몰아쓰기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한, 성장의 숫자는 유지될지 몰라도 그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이 관건이다. 그리고 지속성은 기본에서 나온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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