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다시 ‘롯데 문제’를 꺼낸다. 이 사안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베트남에 진출한 개별 한국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베트남 투자 환경의 예측 가능성, 그리고 한국 기업을 대표한다는 단체들의 존재 이유와 대응 방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지원해야 할 대사관과 정부 산하 기관, 그리고 관련 경제단체들의 인식 전반을 들여다보는 의미도 담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물밑에서 치열한 협의가 진행 중일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은 그 공백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 ‘코참 호찌민’인가
코참 호찌민(베트남한인상공인연합회)이 ‘롯데 문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롯데 투티엠 에코 스마트시티의 무대는 호찌민이다. 또한 문제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토지 가격 산정, 토지 이용료, 추가 부담금의 부과와 집행 역시 호찌민시 행정과 연관돼 있다.
외교적 채널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하노이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롯데 문제’는 투자 행정과 지역 경제의 현장 문제라는 점에서 이를 푸는 출발점 역시 현장이어야 한다.
둘째, ‘롯데 문제’는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호찌민의 투자 환경 전반과 연결돼 있다. 만약 롯데가 최종적으로 철수하고 제삼자가 사업을 승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사업 주체의 교체를 넘어 여러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호찌민 내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의 리스크 인식이 커지고, 대형 장기 투자의 정책 신뢰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베트남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롯데 역시 ‘전면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협상과 절충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입장을 조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금이 출구를 단정할 시점이 아니라, 제도적·행정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국면임을 시사한다.
코참 하노이와는 다른, 코참 호찌민의 선택지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각 주체의 입장은 비교적 단순하게 정리된다. 베트남 정부는 사안을 인지하고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계속 지체되고 있다. 롯데는 강경한 선택지에서 ‘협의’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반면 코참 하노이(주베트남한국상공인연합회)의 경우 ‘롯데 문제’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입장이나 커뮤니케이션은 제한적이다. 이는 노후 산업단지 계약 연장, 부가가치세 환급 등 회원사의 단기적이고 실무적인 현안이 상대적으로 더 시급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일부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구조적이고 상징적인 사안은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 이는 투자 환경 전반의 안정성과 신뢰 측면에서 바람직한 신호라고 보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코참 호찌민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난다.
코참 호찌민이 ‘롯데 문제’에 관여한다고 해서 특정 기업을 대변하거나 특정 주체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접근 방식의 전환이다. 이 사안을 ‘한 기업의 분쟁’이 아니라 ▲대형 투자 프로젝트에서의 정책 예측 가능성 ▲지방정부 집행 과정에서의 정책 일관성 ▲글로벌 투자 도시로서 호찌민시의 제도적 신뢰도라는 프레임으로 재정의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호찌민시가 노바랜드 프로젝트의 법적 걸림돌을 해소하고 사업을 정상화하기로 결정한 일은 유의미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투자 주체가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일정 규모 이상의 장기 투자에는 예측할 수 있는 기준과 일관된 행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대체’가 아니라 ‘보완’의 문제
코참 호찌민이 ‘롯데 문제’에 나선다고 해서 코참 하노이를 대신하거나 대립 구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형식적인 권한이 아니라, 현안을 어떻게 읽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다.
현장의 맥락을 반영해 적절한 시점에, 절제된 언어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험이 축적된다면 코참 호찌민은 ‘민간 경제단체’를 넘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닌 주체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회는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시점이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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