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최태원 회장 명의로 사과 성명을 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한상의가 발간한 상속세 관련 보고서가 발단이 됐고, 그 수습은 몇몇 관계자가 옷을 벗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법정 경제단체라는 자부심이 매너리즘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며 쇄신을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제를 제기한 탓에, 새삼스럽지도 않던 일이 크게 번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이번 대한상의의 신뢰성 문제는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보고서라는 특정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상의의 문제는 단지 보고서 한 건의 문제인가. 아니면 조직 전반의 역할과 기능, 책임에 관한 문제인가.
다소 결이 다를 수는 있지만, 마침 이달 대한상의가 경제사절단을 꾸려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니 시선을 베트남으로 돌려보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보고서 논란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대한상의 베트남은 대체 무슨 존재인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이다.
‘법정단체’ 대한상의, 베트남에서는 민간단체의 사무국
베트남은 누가 봐도 한국 기업의 전략적 거점이다.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이자 제조·물류·소비가 동시에 얽힌 시장이다. 최근 투자 흐름은 이러한 진단을 방증한다. 2025년 베트남 외국인투자(FDI) 통계를 보면 중국은 신규 프로젝트 수에서 가장 앞섰다. 반면 한국은 투자 증액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은 신규 진입을 늘리고, 한국은 기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한국 기업은 베트남에서 진입 단계가 아니라 확장 단계에 있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단체의 역할과 기능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네트워킹, 행사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한국 기업을 대표해 베트남 정부와 이야기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한상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지금 대한상의의 베트남 내 위상은 ‘사무국’에 머물러 있다. 대한상의는 법정 경제단체다. 스스로 밝히듯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종합경제단체’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대한상의에 기대되는 역할과 임무는 대표성, 조정력, 대정부 협상력이다. 그러나 현재 구조는 실망스럽다. 대한상의 베트남사무소의 존재 방식 때문이다. 현지에서 대한상의는 독립적인 대표 기구라기보다 민간 조직인 하노이 코참(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과 호치민 코참(베트남한인상공인연합회)을 연결하는 사무국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상의는 하노이 코참과 호치민 코참으로 이뤄진 코참연합회의 사무국을 맡고 있다.
법정 경제단체가 왜 베트남 현지에서는 사무국인가. 왜 회의 준비와 연락 조정에 머무르며 운영을 지원하는 수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가. 실제로는 베트남이라는 거대 시장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방향을 결정하며, 책임 있게 대외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하노이 코참 회장이 베트남 정부와 FDI 기업 간 공식 정책 대화 플랫폼인 베트남비즈니스포럼(VBF)의 공동의장에 선임된 것은 하노이 코참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한상의 베트남의 존재 방식이 과연 맞는지 되묻게 한다.
베트남 권력구조 변화 속 경제단체 거버넌스 재정립 필요
대한상의 베트남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실망스럽다. 살아 있는 조직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래도 대표적 기능 중 하나인 ‘경제사절단 지원’에서 빛을 발할 때가 왔다.
대한상의의 위상에 흠집이 난 상황에서 큰 행사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경제사절단이 이달 하노이로 향한다. 최태원 회장을 필두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한국 경제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동참한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는 200명이 넘는 기업인이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또 럼(Tô Lâm) 공산당 서기장이 베트남 국가주석을 겸임하게 됐고, 레민흥(Lê Minh Hưng) 총리가 선출되는 등 정부 권력구조에 변화가 생긴 만큼, 이번 경제사절단의 의미는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베트남이 단순한 투자 유치보다 ‘투자의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베트남 경제사절단은 중요한 기회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수많은 기업이 함께 움직인다. 베트남 정부와의 접점도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그러나 이 기회가 단순한 행사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대규모 투자 발표와 그에 따른 베트남 정부의 확고한 지원 약속, 수많은 양해각서(MOU) 체결이 뒤따르는 장면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까지 반복돼 온 패턴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베트남 내 경제단체의 거버넌스를 재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앞으로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대한상의는 지금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국내에서만 던질 이유는 없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한국 기업 투자가 확장 단계로 넘어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한상의는 경제 분야에서 ‘사무국’이 아니라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에서도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최태원 회장에게 묻는다. 대한상의 베트남, 지금 구조는 과연 정상인가.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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