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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SK하이닉스 베트남 공장 투자는 유보가 정답이다

‘전력 배급제’ 속에서 반도체를 만들 건가

베트남 북부 박닌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지 산업단지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토가 상당히 구체화된 듯하다. 사실이라면 큰 뉴스다. 다만 아직 ‘SK하이닉스가 박닌 공장을 확정했다’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베트남 북부가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타이응우옌에 15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테스트 공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이 공장은 베트남 내 삼성전자의 첫 반도체 테스트 공장으로, 2027년 11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인텔, 앰코, 하나마이크론 등은 일찌감치 베트남에 반도체 후공정 거점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한 중국 업체가 박닌 산업단지에 약 8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박닌은 하노이와 가까운 북부 제조 벨트로, 삼성·폭스콘·캐논과 중국계 전자기업들이 형성한 공급망이 강점이다. 여기에 베트남 정부의 반도체 허브 구상까지 더해지면 SK하이닉스가 중국 리스크를 줄이면서 누릴 수 있는 기대 효과는 커진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은 일반 제조업이 아니다. 토지와 산업단지 임대료가 저렴하고, 인건비가 낮으며, 정부가 환영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물·전력·클린룸·특수가스·폐수 처리·물류·인력과 데이터센터 수준의 운영 안정성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그중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전력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베트남의 전력난은 계절성 불편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5월 말 베트남 북부는 40도 안팎의 폭염을 겪었고, 전력 소비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자 전력 사업자인 EVN은 북부 지역 가정과 기업에 절전을 요청했다. 산업무역부도 이와 관련해 전력망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베트남 정부 포털이 6월 22일 소개한 전력 절약 세미나의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미나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와 전력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 전력 문제가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투자 유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직결된 과제라고 평가했다. (관련 기사: 베트남 전력 수급 압박 심화… 정부·전문가, 소비자 절전 지속 독려)

더 중요한 대목은 해법이다. 베트남 당국과 전력업계가 당장 꺼내 든 현실적 해법은 다름 아닌 ‘절전’이다. 절전은 ‘첫 번째 에너지원’으로 표현되고 있다. EVN 측은 매년 4,000~5,000메가와트(MW)의 신규 전원이 필요하지만, 해상풍력이나 LNG 발전 1,000MW를 새로 가동하려면 3~4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피크 전력 수요를 2% 줄이면 1,000MW 규모의 신규 전원 투자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EVN은 2026년 전체 전력 소비량의 3% 절감, 4~7월 건기 피크 기간에는 약 10% 절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또 산업단지와 기업에는 피크 시간대 전력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산 일정을 조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베트남 정부도 단기간에 전력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시기에는 기업이 생산 일정을 조정하고, 피크 시간대 전력 사용을 줄이며, 경우에 따라 사실상 전력 배분 질서 안으로 들어가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공장은 괜찮을까.

일반 조립공장은 일정 부분 생산을 조정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야간 작업조를 늘리거나, 일부 라인을 멈추거나, 납기를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 공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력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면 장비 안정성, 클린룸 운영, 수율, 고객 납기, 품질 신뢰도가 함께 흔들린다. 전력이 단순히 ‘공급되느냐’가 아니라 ‘항상 일정한 품질로,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공급되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기업은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현지 전언대로 대형 글로벌 기업에는 상시 전력 공급이 우선 지원될 수도 있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도 삼성, 폭스콘, 인텔, SK와 같은 기업은 놓칠 수 없는 투자자다. 그러나 이를 곧 안정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늘의 예외가 내일의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력난이 심해지면 정책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태원 회장과 SK하이닉스가 베트남 북부 투자를 실제로 검토하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판단은 ‘진출’이 아니라 ‘유보’다. 베트남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베트남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반도체 공장은 산업단지 분양 자료와 세제 혜택만 보고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만약 여러 이유로 결정을 미루거나 철회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조건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피크 시간대 전력 제한에서 어떤 예외를 적용받을 것인가. LNG, 재생에너지 직접구매, ESS, 비상 발전 설비를 결합한 독립적 전력 백업 구조가 가능한가. 전력 품질과 순간 정전 리스크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적어도 이 질문들에는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베트남 정부는 반도체 허브를 원한다. 박닌도 하이테크 허브가 되고 싶어 한다. 글로벌 기업도 중국 이후의 대안을 찾고 있다. 세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기회가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그 기회의 전제는 전력이다. 전력 없는 반도체 허브는 어불성설이다.

SK하이닉스가 베트남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베트남 북부 전력난이 구조적 과제로 굳어지는 지금, 가장 전략적인 선택은 속도가 아니라 조건이다.

지금 최태원 회장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전력 배급제의 그림자를 안고도 반도체 공장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은 유보가 답이다. 적어도 전력 안정성이 증명될 때까지는.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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