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들이 해외 진출 목적지로 선망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가 베트남이다. 크고 작은 한국 기업이 줄잡아 1만여 곳이나 진출해 있고, 교민 수는 20만 명 규모로, 동남아시아 지역 최대의 한국 교민 거주국이다.
베트남 시장에서 가장 앞서 나간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 시장에서 이미 탄탄한 영업 기반과 브랜드 신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뒤이어 진입한 우리은행도 그동안 한국계 기업과 교민 시장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입지를 쌓아 왔다.
베트남뉴스서비스(VNS)의 4월 보도에 따르면, 신한베트남은행의 2025년 세전이익은 5조4,100억 동(약 3,050억 원)으로 전년보다 다소 줄었지만, 베트남우리은행의 1조5,100억 동(약 850억 원)과는 큰 격차를 보이며 앞서 있다. 베트남우리은행도 2025년 세전이익이 약 10% 증가하며 외형상으로는 좋은 성적을 냈다.
문제는 앞으로다. 그동안 제한된 경쟁 환경 속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영업해 왔다면, 이제는 상황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은행, 9년 만에 베트남 은행업 허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4월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기간 중 현지에서 은행업 정식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약 9년간의 기다림 끝에 얻은 성과다.
이로써 베트남 내 한국계 은행 경쟁은 오는 10월부터 신한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의 삼파전으로 펼쳐지게 됐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은 신한은행보다 우리은행일 가능성이 크다. 신한은행은 이미 현지에서 상당한 고객 기반과 네트워크를 쌓아 놓은 상태다. 반면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덜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기업금융 부문에서는 기업은행의 존재감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은 이름 그대로 중소·중견기업 금융에 특화된 은행이다. 베트남 진출 한국 제조기업, 산업단지 입주기업, 협력업체, 부품·소재 기업은 기업은행이 가장 먼저 겨냥할 수 있는 핵심 고객층이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이제 ‘한국계 은행이니 고객이 알아서 온다’는 식의 안일한 접근이 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지화는 간판만 내건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최근 호찌민 내 베트남우리은행 지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태'(관련 내용: 현장에서 — 베트남우리은행, 대기표 시간도 못 맞추는 현장 운영)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 지점을 열고, 한국어 상담 직원을 두고, 한국 기업 고객을 받는다고 해서 현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화는 고객이 체감하는 운영의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고객은 이런 작은 장면에서 조직의 태도를 읽는다. ‘이 은행은 현지 상황을 세밀하게 보고 있는가’, ‘고객 접점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는가’, ‘베트남 시장을 진짜 중요한 시장으로 대하고 있는가.’
기업은행의 베트남 시장 진입은 단순히 한국계 은행 하나가 늘어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 내 한국 기업 금융 시장에서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특히 산업단지 입주기업과 중소·중견 제조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은행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상당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은행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우리은행에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 베트남에서 거래은행을 바꾸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고객이 비교한다
그동안 베트남에서 한국계 은행은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고객 기반을 누렸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르다. 기업 고객은 금리, 송금, 외환, 대출 조건뿐 아니라 응대 속도, 현지 이해도, 지점 운영 품질, 디지털 서비스, 문제 해결 능력까지 비교할 것이다.
특히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단순 계좌 개설이나 송금 편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인 설립, 투자자금 송금, 운전자금, 수출입 결제, 현지 직원 급여, 세무·회계 리스크, 산업단지 입지와 연계된 금융 지원까지 종합적으로 봐 줄 수 있는 은행을 원한다.
기업은행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이 기존 고객 기반에 기대 느슨하게 움직인다면, 고객 이탈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베트남우리은행 지점에서 번호표 시간이 틀린 것은 작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작은 일로 넘기는 태도는 결코 작지 않다. 베트남우리은행이 앞으로도 ‘번호표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이제 고객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다. 그 선택지가 기업은행이라는 점에서 우리은행은 더욱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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