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4월 21일부터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22일에는 또 럼(Tô Lâm)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23일에는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일정이 예정돼 있다. 특히 이번 방문은 베트남의 신지도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국빈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경제계 거물들이 동행한다. 그만큼 양국이 주고받을 선물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함께할 비즈니스 포럼의 주요 의제는 인공지능(AI), 과학기술, 에너지 전환 등으로 정해졌다. 각 주제는 모두 양국의 미래 먹거리를 좌우할 중대하고도 거대한 비즈니스 영역이며, 상호 공고한 협력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2025년 8월 한국을 국빈 방문한 또 럼 공산당 서기장과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원자력발전, 고속철도, 신도시 개발, 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핵심 광물, AI·바이오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관련 내용: 트럼프 라운드 격랑 속 또 럼·이재명의 첫 만남에 거는 기대)
한국으로서는 베트남 북남철도와 원자력발전, 에너지 전환 등 주요 국책사업과 전략사업에 얼마나 깊숙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베트남으로서는 역점을 두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투자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우선적인 초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삼성이 반도체 분야 투자를 언론을 통해 미리 시사한 바 있는 만큼, 다양한 투자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크고 중요한…
2023년 6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이후 3년여 만의 이번 방문에서는 외형적으로 더 큰 선물 보따리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것은 ‘꼼꼼한’ 이재명 대통령의 진가가 또 한 번 베트남에서 펼쳐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는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의 ‘보고서 왜곡 논란’보다 더 크고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웬만해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국 기업의 베트남 사업 환경에 존재하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에 관한 것이다. 바로 베트남 내 한국 경제단체 거버넌스의 난맥상이다.
앞서 비엣비즈코리아는 대한상의 문제를 국내 사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베트남 현지에서 과연 어떤 구조와 역할로 작동하고 있는지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정보 접근이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당시의 화살은 대한상의를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을 향했다. (관련 내용: 최태원 회장, 대한상의 베트남은 괜찮습니까)
법정단체 역할, 베트남에서도 걸맞아야
이제 ‘한국 경제’를 대표해 베트남을 향하는 수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다시 꺼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베트남 내 경제단체의 거버넌스 문제는 그냥 민간의 내부 운영 이슈 정도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 기업에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다. 공급망 재편의 축이자 제조와 물류, 소비시장이 동시에 얽힌 전략 거점이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이미 ‘진입’보다 ‘확장’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국면에서는 경제단체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친목과 교류, 행사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기업의 이해를 누가 대표하고, 누가 의제를 만들며, 누가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반쪽짜리 외교에서 벗어날 호기
그런데 지금의 구조는 그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대한상의 베트남사무소는 독립적 대표기구라기보다 하노이 코참(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과 호치민 코참(베트남한인상공인연합회)으로 이뤄진 코참연합회의 사무국에 가깝다. 법정 경제단체가 베트남에서는 회의 준비와 연락 조정, 운영 지원의 틀 안에 갇혀 있다. 한국 경제계를 대표해야 할 조직이 현지에서는 실질적인 의제 설정자나 책임 있는 대외 발신자가 아니라 조정 창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기능의 축소가 아니라 대표성의 공백이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베트남의 권력구조와 정책 우선순위가 재편되는 시기다. 또 럼 체제 아래에서 베트남은 단순한 투자 유치보다 투자의 질과 전략성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를 투자하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한국 기업의 집단적 목소리를 정리해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대통령 방문과 경제사절단 일정은 바로 그 구조를 재점검할 적기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민간단체 운영에 개입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마디는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베트남 내 한국 경제단체가 실질적인 대표성과 정책 대응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무릇 ESG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G’는, 적어도 지금 베트남 내 한국 경제단체에서는 찾기 힘들다.
한국 기업의 목소리가 베트남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구조를 방치한 채 미래 협력만 말하는 것은 반쪽짜리 외교에 머무는 일이다. 이번 방문은 거기서 벗어날 기회다. 베트남발 ‘디테일’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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