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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로 밀린 총리 ‘팜 민 찐’과 베트남의 AI·반도체

베트남 권력 서열 4위인 팜 민 찐(Pham Minh Chinh) 총리를 먼발치에서나마 직접 본 것은 지난해였다.

베트남이 국가적 ‘희망의 빛’으로 삼는 듯한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관심을 두던 차에, 지난해 3월 하노이에서 열린 인공지능 행사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굳이 행사 하나를 보겠다고 베트남까지 가기로 결정한 데에는 팜 민 찐 총리를 멀리서라도 직접 봐야겠다는 이유가 컸다.

베트남 국가혁신센터(NIC)에서 열린 이 행사는 총리가 참석한다는 이유로 사전 스크리닝 절차도 거쳤다. 국가적 행사여서인지 산업계 거물들도 대거 참석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많은 국가의 유수 기업 대표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물론 삼성과 SK그룹 계열사도 포함됐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팜 민 찐 총리가 이날 한 시간여 동안 펼친 열변이었다. 물론 그가 말한 내용은 나중에 별도로 정리하면서 이해했지만, 적어도 그의 열정과 의지는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이 베트남의 도전을 새로운 시장 기회로 인식하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후에도 베트남의 인공지능과 반도체 관련 정부 정책과 굵직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팜 민 찐 총리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다.

인공지능·반도체 드라이브가 발목 잡아

앞으로 5년 동안 베트남의 향방을 가를 베트남 공산당 제14차 전당대회가 당초 예정보다 조기 종료되며 지난 23일 막을 내렸다.

‘또 럼’ 체제의 굳건함을 만천하에 알린 이번 제14차 전당대회에서 유독 눈길이 쏠린 인물은 다름 아닌 팜 민 찐 총리다. 그는 최고 지도부 19명(정치국)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권력 4대 축’에서 ‘주변화된 핵심 엘리트’로 밀려났다.

역설적으로도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향한 강한 드라이브가 그의 앞길을 막아선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존재감이 지나치게 부각됐고, 성장 중심의 업무 추진이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각종 미디어의 평가와 분석에 따르면 팜 민 찐 총리의 공과 과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공을 보면, 팜 민 찐 총리는 ‘위기관리형 성장 총리’이자 ‘기업 친화적 총리’라는 평가가 많다. 코로나19 이후 베트남 경제가 고속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제조·수출 중심의 성장 회복을 직접 지휘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북·남 고속도로, 항만·공항 등 물류 경쟁력을 국가 성장축으로 설정하는 한편 외국인투자(FDI)에서 ‘속도와 실행’을 강조해 온 것도 두드러진다.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격상하는 한편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을 정책에 결합한 주체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는 데 무게를 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팜 민 찐 총리는 ‘차기 서기장의 잠재적 후보’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적 추정이 나온다.

또 럼 중심 체제에서 행정 경험과 대외 인지도, 그리고 경제 성과 등 차기 권력 경쟁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차기 주자는 힘을 미리 약화시킨다’는 정치의 불문율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럼 입장에서는 ‘관리하기 어려운 총리’였기 때문이다.

속도와 유연성 약화 우려 제기

우려스러운 점은 집단 지도체제가 팜 민 찐 총리가 보였던 것처럼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강력하게 산업화할 의지와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공고해진 또 럼 체제에서 산업 분야 영향력이 커질 인물 가운데 응우옌 찌 중 기획투자부(MPI) 장관 등이 거론된다. ‘일은 잘하지만 정치적 위협은 되지 않는 인물’로, 집단 지도체제를 존중하고 독자 세력을 형성할 우려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쨌든 경제 전반에서 정책 방향은 유지되겠지만, 속도나 유연성 그리고 비공식 조정력은 감소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팜 민 찐 총리가 주도했던 인공지능·반도체 중심의 드라이브가 꺾이지 않고 ‘지속 가능한’ 힘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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