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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도이머이’ 결단한 베트남을 주목하다

베트남이 9월 9일 공포하고 즉각 시행에 들어간 정부 결의(05/2025/NQ-CP)는 앞으로 ‘제2의 도이모이(Đổi Mới)’, 혹은 ‘디지털 시대의 도이모이’로 회자될 수 있을까.

이번 정부 결의는 앞서 6월 국회를 통과해 2026년 1월부터 발효될 ‘디지털 기술 산업법(Law on Digital Technology Industry)’의 연장선에 있지만, 그 파장은 그 어떤 것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기술 산업법은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규정했다. 실물자산 기반 토큰은 물론, 디지털 자산의 생성과 유통에 관한 제도적 틀을 마련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이번에 ‘5년’이라는 긴 시범 시행 기간을 설정하며 막을 올린 ‘토큰화 자산 시장’을 ‘디지털 시대의 도이머이’라고 명명하느 것은 그 영향과 파장이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곡점, 일대 도약의 시작

1986년 도이모이는 농업·무역·외자 유입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며 베트남 경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25년, 베트남은 또 다른 역사적 개방 실험으로 ‘디지털 자산의 제도화’를 선택했다.

도이모이가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곡물과 상품을 합법화했다면, 이번에는 지하에서 흘러온 수천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자금을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도이모이가 점진적 개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입했듯, 이번에도 5년간 시범 운영을 거쳐 국내 거래소를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규제 기준에 보조를 맞추려는 노력도 유사하다.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국제 무역 질서에 편입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금세탁방지(AML), 사이버 보안, 조세 규율 등에서 글로벌 규제를 따른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자산 제도화는 단순히 새로운 시장 규제를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도이모이 개혁처럼 ‘비공식 영역을 제도권으로 흡수해 국가 성장의 엔진으로 삼으려는 ‘국가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RWA, 더 많은 자금이 더 빠르게 순환 기대

세계적으로 실물연계자산(Real World Asset)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거대한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오는 2030년 전 세계 토큰화 시장 규모를 보수적으로 1~2조 달러(1,394조~2,788조 원)로, 시티그룹은 최대 4조 달러(약 5,576조 원)로 각각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세계 국내총생산의 10% 수준인 16조 달러(약 2경2304조 원)로 내다본다. 참고로 2024년 우리나라 1년 정부 예산은 약 656조 원이다.

실물연계자산, 즉 ‘토큰화 자산’은 비유동 자산을 디지털로 전환해 자본시장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뀌는 ‘차세대 메가트렌드’라 할 수 있다.

기업들은 토큰화 자산과 거래소를 통해 주식·채권 이외의 혁신적 자금 조달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기업의 생명줄인 ‘자금’이 유입되고 순환되는 새로운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투명한 디지털 자산 거래는 곧 국가 재정을 강화하고,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과제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자산 합법화는 ‘제2의 도이모이’에 비견될 만큼 구조적 전환 가능성이 있지만, ‘금융·디지털 경제 생태계 구축’이라는 도전은 결코 쉽지 않다. 투명한 거래소 운영과 법적 보호를 통한 신뢰 확보, 세금·회계 제도의 정비, 국제 규제와의 조율 등이 필요하다.

사회적 위험 관리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이모이는 빈곤 해소와 소득 증대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지만, 디지털 자산은 거품 붕괴·대규모 사기·자본 유출 등 사회적 불신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자산의 특성상 국경 없는 유통이 불가피해 해외 자금 유출 가능성은 물론, 각국이 서로 다른 규제 접근을 택하는 상황에서 베트남이 국제 금융사회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에 얽혀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한국의 상황과 견줄 때, 베트남 정부의 결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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