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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etBiz Korea, 2025. 9.

지상중계/ 한·중에 필요한 것은 품격 있는 협력, 미국과는 다른 … I

전 세계의 시선이 중국으로 쏠려 있다.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이틀간 중국 텐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와 3일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 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가 그 무대였다.

이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2일 인천에서는 한·중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는 작지만 상징적인 행사가 열렸다.

인천시와 주한 중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인차이나포럼’은 ‘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 관계’를 주제로 열렸으며, 한·중 자유무엽협정(FTA) 체결 10주년과 인천–칭다오 자매결연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제질서 변화와 한·중 관계 진단’을 주제로 한 ‘한·중 전문가 대화’에서는 한국과 중국 전문가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한국 전문가들의 발표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국 리더십의 추락, 약육강식의 시작”

민귀식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국제 질서의 변화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의 리더십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균열을 보이며 그에 따른 다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국제 질서의 변화’라고 순화해 말하지만, ‘제국의 몰락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돌과 혼란’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중국, 유럽, 러시아, 인도,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행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제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 이는 첫째와 맞물려 있다. 세계화의 전제 조건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였다.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무역과 상호투자는 안정적으로 이뤄졌고,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전제였으나 지금은 붕괴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안보와 경제가 연동되면서 경제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경제적 보복이 일상화됐다. 그 결과 경제는 정치에 종속되고, 다국적 기업이 타국을 무차별적으로 압박하는 양상까지 나타나며 ‘약육강식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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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etBiz Korea, 2025. 9.

셋째, 국제 규범과 국제기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유엔(UN)과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 질서를 집행해 온 기구의 영향력이 약화되며 국제 사회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혼란과 충돌이 심화되는 이유는 기존 제도가 유효성을 잃었지만 새로운 제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기존 질서를 대변하는 미국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려는 중국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으며, 미·중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 주체가 새로운 규범의 제정자로 떠오르려는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기술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혼란을 키운다.

넷째,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나고, 세계는 만성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이를 돌파하려는 각국은 약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관용의 사회는 사라지고 자국우선주의와 극우 세력이 준동한다. 트럼프의 등장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유럽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의 우경화 역시 글로벌 저성장 국면에서 나타나는 극우의 준동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자국우선주의의로 수렴해 새로운 문명 간 충돌까지 야기하고 있다.

다섯째, 지역 간·국가 간 분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앞선 요인들과 맞물려 있다. 미국의 신고립주의와 극단적 자국우선주의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며, 우리는 지금 새로운 문명 충돌에 가까운 현상을 보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화는 끝났다, 새로운 제도적 규범 아직 없어”

이현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금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약화되었지만, 이를 대체할 제도적 규범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굉장히 모호하고 불안정한 과도기다.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가 약화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자유무역 질서를 지향했다. 탈냉전의 확산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이 질서는 세계화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크게 네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자유무역 체제의 약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다. 이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7~2018년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자유무역은 쇠퇴하고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됐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흐름은 두드러졌다. ‘트럼프 1기’는 오히려 ‘순한 맛’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트럼프 2기’는 전 세계를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사실상 미국이 스스로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를 허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적 전환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과거로의 회귀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을 비판해 온 방식을 스스로 답습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과 자국 시장 보호 같은 정책은 미국이 앞장서 타국, 특히 중국을 비판해 온 영역이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미국이 보호무역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 자국 내 투자를 압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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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etBiz Korea, 2025. 9.

둘째, 미·중 디커플링과 기술의 양분화다. 바이든 행정부든 트럼프 행정부든,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칩스 법(CHIPS Act)’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은 경제안보 논리로 기존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대표적 사례다.

또한 미국은 일본, 한국, 유럽 등 동맹국과 공급망 협력체제를 구축하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쌍순환’ 전략으로 내수를 강화하는 한편 브릭스(BRICS)나 글로벌 남방 국가들의 경제 연대를 통해 미국발 외부 압력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미·중으로 양분되면 전 세계가 첨단산업을 축으로 기술·표준·블록이 이원화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과 같은 국가는 선택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글로벌 가치사슬이 전면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효율성을 중시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장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이 가치사슬 재편의 핵심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다국적기업들은 미국의 견제와 압박 속에서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또는 ‘탈중국 전략’을 추진하며 생산거점을 아세안으로 옮기는 등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역화 움직임도 강화되면서 아시아 내부의 역내 무역과 투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화는 분절화·지역화되며, ‘지역 단위의 세계화’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넷째, 경제안보 중심의 무역체제가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무역, 투자, 자본의 이동은 시장 효율성으로 설명되어 왔지만, 이제는 안보 논리가 깊숙이 개입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반도체 등을 안보의 핵심산업으로, 중국은 에너지와 희토류 등 핵심 광물 등을 전략품목으로 규정해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는 효율성보다 안보의 관점에서 산업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질서는 시장 논리와 안보 논리가 불완전하게 공존하는 이중구조로 전환되고 있으며, 기업과 국가는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경제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 팽창 속 AI 등으로 실존의 문제도 대두”

김태연 서울시립대 중어문화학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자국 중심주의와 민족주의가 팽창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그동안 미덕으로 여겨졌던 ‘다문화 포용’, ‘이민자 향한 유연한 태도’는 점차 적대와 혐오로 변질되고 있다. 사회 내에서도 남녀 간, 세대 간, 민족 간 갈등이 혐오의 형태로 더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으로 정보의 유통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를 통해 신속한 정보 공유와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이를 안보나 경쟁력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소통의 기반마저 경쟁과 분쟁의 영역으로 바뀌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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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공지능을 비롯해 신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많은 사람이 실존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확산 속에서 누구나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그럼, 인간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결국 각국이 경쟁력을 총동원해 밀어붙이는 급속한 기술 발전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실존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와 같은 물음이 뒤따른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한다면 인간의 능력과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나의 두뇌는 어디까지가 ‘나’인가’와 같은 질문도 제기된다.

예전에는 의심하지 않았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함께 풀어야 할 공동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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