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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에 선 베트남의 신동빈… ‘대마불사’로 살아난 롯데, 이제 시작일 뿐

롯데그룹이 베트남에서 다시 한번 살아났다.

그룹 차원에서 공들여 추진했다가 좌초 직전까지 몰렸던 호찌민 투티엠(Thủ Thiêm)의 롯데 에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이야기다. 사업 철수라는 배수진까지 꺼내 들었지만, 결국 베트남 개발사 팟닷(Phát Đạt)과 현지 금융권이 참여하는 새로운 구조로 사업이 다시 움직이게 됐다.

겉으로 보면 롯데의 승리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대마불사’다. 롯데라는 글로벌 브랜드, 투티엠이라는 입지, 호찌민시가 포기하기 어려운 전략 프로젝트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렸기 때문에 사업이 살아났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롯데가 잃은 시간과 기회비용은 결코 작지 않다.

롯데의 얄팍한 베트남 경쟁력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베트남은 롯데그룹이 가장 공을 들이는 해외시장 가운데 하나다. 유통, 식품, 호텔, 부동산, 복합쇼핑몰까지 주요 계열사가 잇따라 진출해 있다. 신동빈 회장 역시 베트남을 핵심 성장 시장으로 삼고 현장 경영을 이어 왔다.

이제 베트남에서 롯데는 괜찮을까. 베트남에서 롯데는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 주고 있을까.

유통을 보면 답은 쉽지 않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형마트 경쟁력에서는 일본 이온(Aeon)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베트남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 롯데마트의 경쟁력은 사실상 ‘편의성’ 하나에 그쳤다. 상품 기획, 식품 품질, 현지화, 고객 경험 등 핵심 경쟁력에서 이온이 시장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모습과 대비된다.

건설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번 투티엠 프로젝트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처음 구상했던 모습 그대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현지 개발사와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구조로 사업을 다시 설계해야 했고, 장기간의 지연과 비용 부담도 감수해야 했다. 값비싼 생존인 셈이다.

현지 생태계와 융합해야 장기 생존 가능

그렇다면 이쯤에서 신동빈 회장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 기업이 진출만 하면 성장하던 시장이 아니다. 현지 정부, 금융기관, 개발사, 소비자와 함께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시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해외 사업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순환보직 중심의 주재원 체계, 본사 승인 중심의 의사결정, 현지 조직의 제한된 권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수조 원 규모의 장기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투티엠 프로젝트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롯데 혼자의 힘만은 아니었다. 베트남 기업이 들어왔고, 베트남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다시 말해 현지 생태계가 프로젝트를 살린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베트남 내 미래 경영 구조의 단면일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이 바꿔야 할 것은 투자 규모가 아니다. 주재원을 더 보내는 것도 아니다. 현지 조직이 스스로 판단하고, 현지 파트너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본사는 전략과 자본을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지 네트워크 전략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재원 체제를 완전히 바꿀 기회

베트남에서 사업의 성패는 정부와의 관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 사회와의 연결, 현지 경제단체, 산업별 협회, 파트너 기업과의 신뢰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다만 베트남 현지 경제단체들이 역량 면에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회원사로 가입하지 않는 기업이 많은 이유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정보 교류와 사업 기회 창출, 정책 소통, 공동 대응이라는 본래의 가치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재원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베트남 근무는 사업 성과보다 골프 실력만 늘리고 돌아오는 자리’라는 냉소적인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주재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아냥이 오랫동안 회자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기업의 해외 주재원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장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있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 베트남에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주재원을 보내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현지 인재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얼마나 깊이 현지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얼마나 빠르게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가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변곡점에 선 롯데의 베트남 사업

베트남은 롯데에 가장 중요한 해외시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투티엠 프로젝트는 ‘대마불사’로 위기를 한 차례 넘겼다. 하지만 다음 30년의 경쟁력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신동빈 회장이 지금 바꿔야 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경영 방식이다.

베트남 주재원 수를 대폭 줄이고 현지 인재 채용을 크게 늘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투티엠 프로젝트를 계기로 베트남 사업 전반을 대상으로 한 특별 감사도 검토할 만하다. 사업 지연의 원인이 외부 환경에만 있었는지, 내부 의사결정과 관리 체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비용 집행과 프로젝트 관리가 적정하게 이뤄졌는지까지 객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위기 이후 책임 추궁보다 시스템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성주
Founding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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